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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 탈출기

다 포기 하지마


삶의 의욕이 없었던 탓이었을까? 힘이 없어서? 욕심이 없어서 였을까? 나는 자주 포기했었다. 뭔가 꾸준히 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러다 결국 내 삶도 포기 하고 싶을 때가 왔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부터 학교가 정말 가기 싫었다. 공부도 못하고 어리숙 했으며 바보 취급을 당하기 일수였다. 난 그냥 공부도 못하고 심지도 약한, 가난한 바보였다. 툭하면 싸움 잘 하는 이들에게 얻어 맞거나 돈을 뺐겼다. 맞아서 안경이 부러지고 내 마음도 무너졌다. 집에 가면 나는 어머니와 누나의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공부도 못하는 한심한 인간으로 여겨질 뿐이었다. 나는 가족을 사랑했지만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루 하루가 고통이었고 나는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한 날은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뛰어 내려 보려고 했다.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그때 당시는 정말 무섭기는 커녕 빨리 뛰어 내려 저 바닥에 편히 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 내 척추를 잡는 느낌이 들었다. '너만 그렇게 죽어 편하게 누우면 너의 엄마와 누나는 어떻게 살아가냐'라는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당시의 나는 착한 편이여서 혼자만 편하자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할 때 까지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는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 한다. 왜냐하면 사는 게 정말 고통이라서 죽고 싶은 거다. 그건 사실 비겁한 것도 이기적인 것도 아니다. 그저 지금 사는 게 너무 괴로울 뿐인 거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거다. 그래서 삶을 포기 하고 싶어진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 스스로 내 인생을 포기 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지금의 나는 아주 즐겁고 만족스러운 삶을 산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도 더 기대가 된다. 어떻게 죽고 싶던 사람이 이렇게 삶이 즐거워 졌을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더 바보 같은 삶을 살았다. 부족한 사회성, 순수함을 넘은 멍청함, 뭘 해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무능함 등이 나를 괴롭힐 뿐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 중에도 항상 놓치 않았던 것이 바로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 이었다. 내 삶을 포기 하지 않고 더 이상 기존의 모습 그대로 살고 싶지 않다면 무얼 해야 했을까? 바로 변화가 필요했다. 변화와 함께 성장의 기틀을 잡아야 했다. 계속해서 찾았다. 내가 변화될 수 있는 길을, 성장 할 수 있는 방법을, 하지만 정말 쉽지 않았다. 계속된 좌절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2007 1월 나는 태국으로 봉사 활동을 가게 되었다. 가기 전엔 정말 엄청 나게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런 긴 시간 내가 다녀올 수 있을까?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팀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등등 불안감이 가득했다. 그런데 내 인생의 전환점이 제대로 되려고 했던지 그 동안 없던 연차가 회사에 처음 생기게 되었다. 나는 팀장님에게 1월에 연차 7개를 한꺼번에 쓰겠다고 말했다. 팀장은 안됀다고 했고 부장님도 내게 화를 내셨다. 항상 망설이기만 하고 불안해 하며 결정 장애를 갖고 있던 내가 그때 만큼은 퇴사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다녀 오겠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팀장님도 부장님도 평소에 보지 못했던 내 단호함을 보곤 조금 놀라는 듯 했다. 그리곤 결국 가기 전날에 부장님의 승인이 났다. 조마조마해 하던 내게 이 일은 나에게 작은 승리의 맛을 보게 해주었다.

 태국 봉사팀은 나를 포함해서 10여명의 멤버가 팀을 이뤄 어설프지만 공연도 하고 봉사도 하는 일정 이었다. 멤버들을 보면 다들 각자 자기만의 좋은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내 또래 남성들은 의사,대기업 비서실장 등 직업도 좋고 성격도 좋은 그야 말로 베스트 남성 이었다. 또한 여성들도 능력 있고 똑똑해 뭐든 척척 잘해 내었다. 그에 비해 워낙 우둔했던 나는 잘 하는 것도 없었고 저질 체력에 멀미까지 심하게 했다. 나는 다른 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애를 썼다. 당시 나의 나이는 31, 부끄럽지만 나의 모습은 그랬다.

 어렵사리 11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이대로 이런 나약한 모습으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갔던 동료 중에 카센터 개업을 준비 중이었던 한 동생과 매우 친하게 되었다. 몇 번 그의 차를 얻어 타면서 한 마디 했다. '돈 아깝게 차는 뭐하러 끌고 다녀!' 동생은 내게 말했다. '생각보다 유지비가 많이 안 들어요. 그리고 차를 가지고 다니면 시간을 아낄 수 있고 남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어요'라고 했다. 그의 말을 들었을 때는 부정적인  생각에 '그래도 돈이 아까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생각을 바꿔 보았다. 차를 사서 직접 운전을 하면 시간도 아끼고, 멀미도 해결되고, 무릎이 아픈 어머니도 모시고 다닐 수 있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나는 면허는 있지만 운전을 못했다. 사회 생활을 하려면 운전은 기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동생으로 부터 소개를 받아 250만원을 주고 중고차를 샀다.  10년된 수동 기어 구형 아반떼였다. 동생은 내게 친절히 운전을 가르쳐 주었다.

 처음엔 정말 운전 자체로 공포심이 일었고, 손은 떨리고 쉬지 않고 땀이 났다. 차를 산지 5일째 되는 날 여전한 공포심을 안고 차를 가지고 출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비가 오는데 앞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앞이고 뒤고 아무 것도 안보였고 두려움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결국 나는 앞차를 박았고 그와 동시에 뒷차도 내 차를 박았다. 나는 그 뒤로 3개월 동안 20여차례의 사고를 냈다. 신기한 건 그 뒤로는 사고가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두려움은 2~3년간 유지 되었는데 3년 째 되는 때 부터 두려움도 많이 없어졌다. 사고가 두어 번 나자 차를 소개 해 줬던 동생이 내게 말했다. '그러게 뭐하러 수동을 샀어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내 자신을 탓했다. '그러게, 멍청한 내가 차는 무슨 차야.'라며 자신을 탓했다. 그 동생은 단시 수동 기어 차를 산 것을 말한 건데 스스로 더 비약해서 자신을 탓했던 거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다. 아무리 강해 보이는 사람도 약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이 세상에서 나란 존재는 매우 작아 보인다. 하지만 포기할 필요 없다. 나를 붙잡아 줄 존재는 나밖에 없다.

 그렇게 운전을 하게 된 뒤로 나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포기 하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들면 그것은 죽을 때 까지 계속 해서 내 것이 된다는 점이었다. 나는 운전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웠다. 운전을 통해 멀미를 극복했고 운전을 통해 행동 반경이 커지게 되었다. 가족들을 태우고 아주 오랜만에 외식을 갔다. 마트를 갔다.

 포기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내것으로 만들면 그건 평생 내 것이 된다. 어렵지만 악기를 하나 잘 다루게 되면 평생 그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영어를 잘 하게 되면 평생 영어로 대화 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그렇게 되기 까지 힘겨운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포기 하지 않고 이겨 내면 남은 인생 동안 그것은 내것이 된다.

 나는 이제 운전을 잘 한다.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달리면 상쾌하고 행복하다. 그럴 때 마다 운전을 통해 얻은 좋은 원리를 생각한다. 포기하지만 않는 다면 내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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